지강헌:유전무죄 무전유죄(그들은 억울한사람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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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사고

지강헌:유전무죄 무전유죄(그들은 억울한사람들인가?)

by jandi0515 2023.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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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세상을 뜨겁게 달구던 지강헌 사건, 당시 4명의 탈주범들이 인지들을 잡은 채 자신들의 억울함을 하소연하며 세상의 불공평함에 대해 이야기하던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내용을 당시의 불공정한 특권층의 혜택으로 물들어진 사회에 불만을 모든 국민들의 마음에 깊은 울림을 준 사건입니다. 

지강헌 유전무죄 무전유죄
인질극 당시 사진

 

1. 지강헌 사건이란?

1988년10월8일 영등포교도소에 공주교도소로 이송되더 25명의 죄수중 12명이 교도관을 흉기로 찌르고 탈주하여 서울 시내로 잠입하여 인질극을 벌인 한 사건이다. 이는 단순한 탈주범이 벌인 인질극이 아닌 , 일반 시민들에게는  당시 부패한 사법부와 황금만능주의를 비판하며 벌인 하소연처럼 받아들여졌고, 이는 모든 국민들이 고개를 끄덕일만한 사건이 되었다.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것은 이들이 한 행동은 무죄가 아니다.

 

이름 나이 특이사항
지강헌 당시 34세 사살
안광술 당시 22세 자살
강영일 당시 21세 생존
한의철 당세 20세 자살

2. 탈출 그리고  도망

경찰들은 탈주범 4명의 위치를 8박9일동안 찾지 못하고 있었다. 경찰의 상상과는 반대로 이들은 일반 가정집을 위주로 은신하며 여러 집에 침입하여 집주인을 인질로 잡으면서 위치를 옮겨 다녔다고 한다. 이들은 4번째 집에서 당시 집주인이었던 집주인의 침착함으로 이들에게 저녁식사를 먹고 다니냐는 말과 함께 저녁밥을 챙겨주며 , 이리저리 이야기를 들어줬다고 합니다. 하루하루 긴장의 연속으로 도망치던 탈주범들에겐 이들의 밥 한 끼는 너무나도 긴장이 풀리는 한 끼였을 것 같습니다. 4번째 집을 빠져나왔을 때 당시 4번째 집주인이 이들을 경찰에 신고하였다. 그리하여 '북가좌동'의 한 가정집에서 이들과 경찰의 대치전이 시작되었다.

3. 인질극 그리고 체포

당시 인질극을 벌이던 집 근처에는 모든 모든 기자들과 경찰인력이들 총 출동했다. 생중계로까지 방송되며 모든 대중의 관심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전국으로 생중계되던 방송사들을 향해 이들은 세상은 불공평하다 하소연하였다. 탈주범들은 560만 원 정도의 절도로 17년의 징역형을 받았다. 하지만 그 당시에 같은 시기 전두환의 막냇동생 전경환은 70억을 횡령한 뒤 7년(3년 3개월 후 석방)을 선고받았다. 이러면서 경찰과 대치하던 이들중 안광술, 한의철 두 명은 그 자리에서 자살하였고, 당시 도주용 차량을 준비해 준다던 경찰에 말에 확인하러 나갔던  강영일은 확인하러 나온 틈을 타 지강헌이 "너라도 살아"라며 다시 돌아오지 못하게 하여 투항하였다. 당시 탈주범들 중의 리더 격인 지강헌은 경찰들에게 홀리데이 노래를 틀어 달라고한뒤 그것들 들으며 자살을 시도하려 했지만 경찰에 의해 제지된다.

 

 

 

 

"이 바보들아! 나는 국민학교밖에 못 나왔어! 국민학교밖에 못 나왔지만, xxx들. 난 그동안 생각했단 말이야! 이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서 자기 인생을 버렸단 말이야! 그런데도 결국 오늘 이 사회에서 자신의 행복을 찾기 위해서 노태우 대통령, 국민을 위한 노태우 대통령! 이 자리에 나타나지 않고 있어!" - 지강원 

 

"낭만적인 바람막이 하나 없이 이사회에서 목숨을 부지하기에는 너무나 살아갈 곳이 없었다."

 

지강헌 전경환 형량 비교
출처:jtbc

이때 나온 말이 유전무죄 무전유죄이다.

 

4. 유전무죄 무전유죄

잘못을 하면 그에 응당한 벌을 받아야 하고 이는 누구에게도 다르게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누군가는 없었던 일처럼 아무 처벌도 받지 않고 지나가기도 한다. 유전무죄무전유죄는 이처럼 모든 이에게 평등해야 할 민주주의 헌법 정신에 위반되는 현실 상황에 빗대어 나온 말이다. 돈과 권력이 있는 자는 처벌은 경감받거나 피할 수 있는 사회 특별층을 비판하며  당시 지강헌과 전경환(전두환의 막냇동생) 대비되는 판결을 따라 부르던 말이다.

5. 인질들의  탄원서

당시 생존자였던 강영일의 재판장에게 무단으로 침입해서 은신하던 5집 중에 무려 3집에서 탄원서를 제출해 주었다. 당시 인질들의 인터뷰를 들어보면 그들은 예상 밖으로 신사적이었으며, 그들의 요구는'방송'이었지 '탈주'가 아니었다.라고 증언해 주었으며, 당시 탈옥수들은 인질들에게 "죄송하다 조금만 참아달라", "금방 끝날테니 이해해 달라". 면서 두려워하는 인질들을 달랬고, 경찰들 앞에서 인질들의 목에 칼을 들이대며 고성을 지르면서도 인질에게 귓속말로"절대로 다치지 않게 할 테니 걱정하지 말라"며 최대한 인질들을 배려했다고 한다. 

 

 

 

 

6. 마무리

여기서 그들의 인질극은 합당하지 않았지만, 당시 느끼던 사회적 분위기와 상황에 사람들은 범죄자이기보단 억울한 하소연으로 받아들이면서 모든 국민들 뇌리에 깊게 박히며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2006년에는 해당 사건을 토대로 영화 <홀리데이>를 개봉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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